1. 취재착수
① 단독취재( ○ ), ② 단독기획( ), ③ 보도자료 심층기획( ), ④ 제보( ), ⑤ 기타( )
담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꽁꽁 숨겨왔던 긴 이야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문학을 공부했던 15년 전 대학 시절 캠퍼스 귀퉁이에서, 단 한 문장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읽은 선생님의 초기작은 저의 20대 정서를 강렬하게 지배했습니다.” 2018년 11월 12일, 한강 작가에게 발송됐던, 저의 옛 휴대전화에 저장된 장문 메시지 중 마지막 단락의 한 줄입니다. 그러나 당시 저 문자 메시지에도 한강 작가의 답신은 단 한 줄도 오지 않았습니다.
옛 휴대전화를 스크롤해보니, 2019년 5월 전송 메시지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한강 작가가 ‘약 100년 후인 2114년 공개될 원고의 기증자’로 선정된 시기여서(오슬로 다이크만 도서관, 퓨처 라이브러리 프로젝트, 2019년 ‘아시아 최초’ 한강 선정) 거듭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만 역시 응답은 없었습니다. 이후 그해 12월 겨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한 독자와의 만남 행사에서 한강 작가를 만나 잠시 대화했는데, 한강 작가는 숫기 없는 웃음으로 그간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던 이유를 대신했습니다. 내심 저는 그날 작가의 눈빛에서 냉철한 거절보다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는 없음’이란 의미로서의 침묵을 읽었던 것도 같습니다. 기자로서의 집요한 요청이 애정하는 작가의 집필에 방해가 되리라 판단해 관두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2016년 부커상 수상 이후 한강 작가는 언론 취재에 응하지 않았으므로, 저 역시 그의 적요를 부수려 들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운명이 허락한다면 만남을 이루고 싶다는 희망까지 내다버린 건 아니었습니다. 이후 긴 시간이 흘렀고, 최근 한강 작가의 이름이 유럽 전역에서 굵직한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모습을 기자로서, 독자로서 지켜봤습니다. 한강 작가는 2023년 프랑스 메디치상과 페미나상(최종 후보), 2024년 에밀 기메 문학상, 아울러 국내에선 호암상과 포니정혁신상의 주인공이었습니다. 2015년부터 문학을 담당했던 기자로서, 그리고 일인의 독자로서, 저는 지금이 다시는 오지 않을 ‘바로 그 순간’일지도 모르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만한 호기(好期)는 재연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한강 작가가 보잘 것 없는 몇 줄의 글을 읽고 굳게 닫힌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어보일지, 그동안 극도로 열망했던 인터뷰를 이번엔 성공시킬 수 있을지는 한강 작가를 장기간 취재했던 저로서도 확신하기 어려웠지만, 그저 저는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편지로 단단히 잠긴 그의 내면의 창문을 (거칠게 열기보다는) 차분히 녹여보겠다는 결심부터 섰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업의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이란 고언을 수도 없이 되뇌었습니다. 며칠 뒤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단독 인터뷰’로 지면에 새겨질 기사는 이렇게 출발했습니다.
2. 보도제작경위
▶한강의 전작(全作)을 ‘열다’
한강 작가의 1994년 등단작 단편소설 「붉은 닻」이 수록된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비롯해 작가가 출간한 모든 책을 거의 초판본으로 소장 중입니다. 한강 작가가 해외에 처음 이름을 알린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영문판 『The Vegiterian』의 가제본(정식 출간 전 해외 출판인들이 내부에서 돌려보는 판본, 일명 ‘더미판’이라 불림)까지 제 책장에 꽂혀 있습니다. 인터뷰 질의를 준비하며저는 한강 작가가 쓴 모든 작품, 정확히는 접근 가능한 거의 모든 텍스트를 다시 읽었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설 및 시(詩) 작품과 책에 수록된 ‘작가의 말’ 등 집필후기, 각종 에세이와 작가가 남긴 온라인 자료를 모든 범위에서 다시 읽었습니다. 이후 주말 이틀에 걸쳐, 이번 인터뷰에 담긴 의미를 재차 설명하는 내면적인 서신 한 장, 총 13개의 질문을 꾹꾹 눌러 담은 인터뷰 질의서 두 장, 그리고 대외적으론 구체적 내용을 밝히기 어려운 또 다른 자료 두 장까지, 도합 다섯 장의 편지를 이메일로 송부했습니다. 기한은 일주일을 드렸으나 6일째 되던 날까지 아무런 답도 없었습니다.
▶7일째, 다시 보낸 편지
요청했던 기한이 다가오면서 한강 작가 인터뷰가 이번에도 불발되지 않을까 우려돼 고심했습니다.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이번에도 실패할 경우 한강 작가와의 인터뷰 인연은 향후 없으리라고 판단했습니다. 7일째 되던 날, A4용지 세 장짜리 답신이 도착했습니다. 이메일 답신은 “보내주신 질문지를 잘 받았으며, 마음이 담긴 편지를 감사히 읽었다”는 내용으로 시작됐습니다. 함부로 마음을 열지 않았던 작가의 내적인 골방을 드디어 열었다는 희열 때문에 숙연해질 정도의 심경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란 냉소적 자문(自問)과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뜨거운 사력(死力)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최선을 다했는데, 그 결과 작가가 답을 했다는 사실은 벅찬 환희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질의서를 읽다가 조금은 냉정을 되찾아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처음에 전달한 13개의 질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질의, 즉 ‘소설의 윤리’에 관한 물음에 한강 작가가 답을 할 수 없다고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질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2. 다소 어려운 질문일 듯합니다. 문학이, 소설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윤리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소설에서, 또 소설가에 의해, 훗날의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 마지막 날까지도 지켜져야만 한다고 믿으시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돌이켜보니 너무나 ‘큰’ 질문이었기에 작가의 무응답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답변이 결여되면 인터뷰의 맥(脈), 환언하면 인터뷰를 이루는 ‘기승전결’의 흐름에서 결(結)이 생략된다고 봤고, 질문을 다음과 같이 톤다운한 뒤 추가 질문을 송부했습니다. ‘소설을 쓰고 읽는 행위의 힘, 다시 말해 세상에서 소설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거칠고 딱딱하기만 한 세상에서 소설은 어떤 힘을 가질까요.’ 수일이 지난 뒤 한강 작가가 추가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우연과 우연이 주는 ‘경이감’은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노벨상 트위터의 ‘Han Kang’
국내 신문사와 방송사의 문학 담당 기자들은 매년 한국시간으로 10월 첫째 주 목요일 오후 8시에 극도로 긴장합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의 어느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될지는 처음부터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문학 담당 기자로서 저는 2015년부터 욘 포세, 아니 에르노, 압둘라자크 구르나, 루이즈 글릭, 페터 한트케, 올가 토카르추크 등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기사를 써왔으나 올해도 예년처럼 섣부른 예상은 힘겨운 상태였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이 선정하는 당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이름은 노벨위원회 X(옛 트위터)에 가장 먼저 공개됩니다. 대다수 기자들은 노벨위원회 홈페이지나 유튜브 영상을 참조하지만 8시 정각 직후에 노벨위원회의 X가 가장 빠름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초당 몇 회씩 X를 스크롤하던 중 ‘10월 10일 오후 8시 00분 15초경’ 매우 익숙한 얼굴과 얼굴 아래 새겨진 이름을 확인했습니다. 노벨위원회 X에 공개된 수상자 이름은 7개의 알파벳으로 이뤄진 ‘Han Kang’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전 머리를 감싸며 편집국에서 난데없이 ‘으악’ 소리가 나도록 비명을 질렀습니다. 지난 며칠간 고심하며 한강 작가의 전(全) 작품을 다시 읽었고, 이후 열흘 동안 한강 작가와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해 어렵게 답신을 받았는데, 한강 작가가 2024 노벨문학상 주인공으로 낙점됐다는 기막힌 우연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잠시 할 말을 잊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장 기사를 송고하고 조판에 돌입해야 했기에 주어진 시간인 1시간 30분 동안 A1면 톱기사(한국 작가 첫 노벨문학상…한강 단독 인터뷰 “심장 속, 불꽃이 타는 곳 그게 내 소설이다”)와 A3면 전면 인터뷰(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단독 인터뷰 “창밖은 고요합니다 고단한 날에도 한 문단이라도 읽고 잠들어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직전 이뤄진 매경 인터뷰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관련 유일한 인터뷰로 남았으며, 이는 해외 언론사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3.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 한강 작가와의 특수 이해관계나 사적인 친분 등 해당 사항 없습니다.
4.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① 기자협회보 1면 톱, 매경 한강 인터뷰 보도(기자 본인을 인터뷰, 한강 인터뷰 지면 수록)
- “한강 노벨상, 언젠간 받을 거라 생각…올해일 줄은 몰랐다”(10월 16일)
② 미디어오늘. 매경 한강 인터뷰의 주요 답변 언급하며 소개
- ““언어는 우리를 잇는 실” 1면 톱 장식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10월 11일)
- 미디어오늘도 기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왔으나, 당일 업무사정상 인터뷰는 정중히 사양
③ 한강 노벨상 보도 관련해 매경 한강 인터뷰 주요 언급
- “[이희용의 미디어 전망대] ‘조그마한 백’의 조그마한 방송”(한겨레, 10월 30일 23면)
- “[이슬기의 미다시] 한강을 함부로 소환하지 말라”(미디어오늘 10월 24일)
④ 매경 한강 인터뷰의 구체적인 내용을 직접 인용해 보도
- “심층기획-논픽션 ‘한강 격류’ 제1, 3, 4화”(세계일보, 10월 14~18일)
- “조해진 소설가 “난민에게 선뜻 자기 집 내주는 사람들이 있네요“(동아일보, 10월 28일)
⑤ 한강 작가가 매경 인터뷰에서 최근까지 읽었다고 밝힌 책 4권 조명
-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매경 한강 인터뷰 기사 토대로 추천도서 목록을 기획 자료로 배포
- 이에 연합뉴스, 뉴스1, 국민일보, 한겨레, SBS 등이 ‘한강이 최근까지 읽은 책’으로 보도
- 참고로 해당 책은 유디트 샬란스키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루소 ‘식물학 강의’,
김애란 소설가 ‘이중 하나는 거짓말’, 조해진 소설가 ‘빛과 멜로디’ 총 4권
(위 책들은 교보문고, 예스24 등 주요 서점가 주간 베스트셀러 상위권, 최상위권에 오름)
⑥ 해외 신문사 한곳에서도 매경 한강 인터뷰에 대한 관심
- 매경은 자체 영문뉴스 서비스인 Pulse.mk.co.kr 통해서 한강 단독 인터뷰를 영문 송고
- 이집트 신문 Al-Masry Al-Youm의 Al-Hassan 기자 매경 인터뷰 인용 요청 (10월 15일)
(구글 검색 가능한데, 이를 보고 이집트 신문사에서 인터뷰 내용의 인용을 이메일로 요청)
5. 사회에 끼친 영향
① ‘한강 작가 인터뷰 후기’ 담은 기자 개인의 SNS 글에 대한 폭발적 반응
- 노벨문학상 취재 여담 쓴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 2560개, ‘공유’ 1100회(11월 5일 기준)
- J모 카이스트 교수, S모 국립암센터 교수 등의 ‘좋아요’ ‘공유’ 횟수 포함 시 측정 불가
- D모 X(트위터) 계정에서 공유 820회 이상으로, 모든 SNS 합산 시 ‘공유’만 2500회 이상
- ‘한국인 첫 노벨문학상 수상’과 ‘단독 인터뷰’ 결합된 우연성, 깊이 있는 내용에 독자 공감
② 매경 한강 인터뷰에 대한 후기 글에 대한 잡지 청탁 및 강연 요청 쇄도
- 한강 인터뷰 후기 원고 청탁과 대학 및 서점 특강 요청 약 15건 등 상당한 반응
- 한국언론재단 ‘신문과방송’, 문예지 ‘자음과모음’, 뉴욕 본사 잡지 ‘W매거진’ 3곳만 승낙
③ 출판계, 매경 한강 인터뷰 홈페이지와 SNS 통해 집중 조명
- 교보문고,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매경 인터뷰를 ‘편지글’로 웹페이지 전면 게재 (11월 5일)
(https://event.kyobobook.co.kr/detail/227569)
- 문학동네, 인스타그램 ‘카드뉴스’로 매경 한강 인터뷰 소개(10월 26~27일, 좋아요 2000개)
(https://www.instagram.com/p/DBlbvQspKFQ/?igsh=NmlwYXRjY3NoOGQw, 1회)
(https://www.instagram.com/p/DBnyymeNP1i/?igsh=MTZhYXo2Z2hqNXBycA, 2회)
④ 한강 작가와의 질의응답을 ‘날것’ 그대로 실은 것에 대한 또 다른 반응
- 작가 발언이 기자 손에서 왜곡될 가능성과 시간적 제약으로 인터뷰 원본을 그대로 게재
- 리라이팅 없는 기사 호평하면서도, 잡지문화교육원은 이 기사로 리라이팅 수업 열기도
6.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한강 단독 인터뷰 기사가 지면과 온라인으로 보도된 뒤 익명의 독자들, 언론계 선후배, 문화계 지인으로부터 수많은 연락을 받으며 한 달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일이 대답을 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연락에 파묻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저 수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제가 결코 잊을 수 없을, 짧고도 꽤 강렬했던 호평 하나를 굳게 기억합니다. 그건 바로 “레거시 미디어의 존재 이유를 한강 인터뷰 기사로 보여줬다”는, 얼굴도 알지 못하는 한 독자분이 남긴 소중한 댓글이었습니다.
질문은 그 사람을 말해주므로 인터뷰 기사 속 질문에 부족한 사견이 조금 삽입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각박하고 딱딱합니다. 신문의 많은 지면이 숫자에 집중하거나 지식을 나열하는 일에 함몰돼 있고, 그 반작용으로 가볍거나 선정적인 기사가 ‘일회용품’처럼 소비됩니다. 그 결과, 미디어는 줄곧 냉소와 외면의 눈길 속에서 길을 잃곤 합니다. 고작 하나의 기사가 세상을 전부 변화시킬 순 없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왜 신문을 만드는 일에 의미를 두며 하루를 살아가는지를, 왜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하나의 기사를 싹틔우기 위해 분투하는지를 기사를 통해 ‘아주 조금은’ 증명하는 계기였다고 자평하고 싶어집니다. 이번 인터뷰는 길게 보면 6년이란 시간이 소요됐기에 개인으로서는 긴 여정이었지만 되돌아보면 한강 작가와의 인터뷰를 이루고자 지금까지 거쳐 왔던 모든 실패와 모든 수고와 모든 경험이 바로 이날의 인터뷰를 위해 계획된 것만 같은, 영광스러운 마음까지 듭니다. 그러나 도취되지 않고, 익명의 독자가 적어준 저 댓글 한 줄을 기자생활을 끝마치는 그날까지 붙들어보고 싶습니다. 위 글은 언론윤리강령기준을 모두 준수해 작성됐습니다.
7. 기타 고려사항
- 해당 사항 없습니다.
취재후기
(410회)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인터뷰/매일경제신문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인터뷰
매일경제신문 김유태 기자
골방으로 숨은 작가를 애써 만나려는 모든 시도는 그의 적요를 부수는 일입니다. 골방의 자물쇠는 대개 안쪽에서 잠겨 있기 마련이고 어떤 열쇠가 진짜 열쇠인지를 찾지 못할 때 절망하기도 합니다. 인터뷰 기사만 그러할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기자분들이 발견되지 않는 열쇠를 찾아내려 자기만의 언덕을 오르는 중입니다. 삶이란 간절하게 열망할수록 실패로 귀결되는 반비례의 원칙으로 채워진 것만 같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노벨상 수상이란 우연적 요소가 겹쳐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성취가 예정돼 있지 않았던, 실패와 실패가 쌓여 이뤄진 결과란 것을요. 기자들은 실패의 발자국을 거울삼아 한 걸음씩 더 내디디려 하고, 그러다 우연과 만나면 ‘그 글을 세상으로 내보내도 좋다’는 약속을 받는 듯합니다. 그 시간을 버티고 계신 언론계 모든 선후배님들의 피땀에 경의를 표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한국기자협회와 늘 깊은 조언 주시는 손현덕 대표, 기꺼이 큰 지면 허락해주신 김대영 편집국장, 이 모든 과정을 동행해주신 전지현 선배(문화스포츠부장), 지면을 미학적으로 가꿔주신 편집부 선후배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 누구보다도 잠시나마 골방의 문을 열고 목소리를 들려주신 한강 선생님, 고맙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410회 전체 총평
제410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올해 들어 가장 많은 12개 부문 85편이 출품됐다. 정치·사회적인 이슈도 많았던 데다 연말을 앞두고 언론사별 중장기 기획들이 마무리되면서 출품작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그만큼 심사위원들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꼼꼼하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8편의 수상작이 나왔다. 늘어난 출품작만큼 좋은 기사들이 많았고, 수상작 역시 올해 들어 가장 많이 나왔다.
취재보도1부문에서는 국민일보의 <사상 첫 대리 입영 적발> 보도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 기사는 국방이 ‘국민의 의무’로 되어있는 우리나라에서 국가 병역 관리시스템의 허술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1970년 병무청 창설 이래 최초로 벌어진 이 사건에 대해 국민일보는 병무청·육군의 신원확인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공소장을 입수해 범행의 구체적 내용까지 밝혀냈다. 사회적으로 상당한 파장을 일으킨 기사였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로부터도 호평이 이어졌다.
취재보도2부문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된 KBS의 <“자다가 잡혀갔다”...중국 ‘반간첩법’ 우리 국민 첫 구속> 보도는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을 정도로 의미 있는 보도였다. 일단 중국이라는 폐쇄적인 국가에 우리 국민이 반간첩죄로 구속되어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충격을 줬다. 여기에 기자의 신변조차 위협적인 상황 속에서도 5개월 동안 끈질기게 취재를 이어간 점, 구속 당사자와 그 가족의 안전까지 고려해가면서 기사를 만들어 낸 점 등은 사안에 접근하는 기자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보도였다.
경제보도부문에서는 한국경제신문의 <스테이블 코인의 공습> 보도가 수상작에 이름을 올렸다. 이 기사는 가상 자산인 스테이블 코인이 국내 무역 결제용으로 활용되고 있을 정도로 그 규모가 확대되고 있지만, 관리 부실로 한국 거시경제 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특히 일반인에게는 낯선 암호화폐 관련한 기사임에도 읽어보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사를 풀어낸 것도 높은 점수를 받은 요인으로 꼽혔다.
세계일보의 <망상, 가족을 삼키다> 보도는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기사로 평가됐다. 10년간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재판받은 823건의 판결문 분석과 피해 가족에 대한 현장 취재는 정신질환자의 ‘망상 증세’로 인한 가족들의 아픔을 공감하기에 충분했다는 평을 받았다. 또 정신질환자를 가족으로 둔 다섯 가정의 사건을 분석, 네러티브 형식으로 풀어 쓴 방식 역시 이 기사를 한층 더 빛나게 했다는 심사위원들의 공감대가 있었다.
지역 취재보도부문에서 수작(秀作)으로 꼽힌 부산일보의 <시민은 예매 전쟁, 공공기관은 특혜 예매-지역 이전 공공기관 KTX 표 사재기> 보도는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시민들은 구하기 어려운 KTX 표를 공공기관에서는 코레일과 별도 계약을 통해 사재기를 해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특혜였다. 결국 이 보도로 코레일에서 공공기관에 주는 선 예매는 중단됐다. 부산일보 보도의 힘이었다. 시민들의 일상과 밀접한 기사였다는 점도 가산점을 받는 데 한몫했다.
지역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서는 경기일보의 <발암물질 위의 아이들> 보도가 호평을 받았다. 경기일보 보도 후 경기교육청 자체 조사에서 79%의 어린이놀이터에서 발암물질이 나왔다는 점이 국정감사에서 공개됐고, 지역사회 파장이 상당했다. 또 이를 개선하기 위한 예산이 별도 확보되는 등 기관·단체의 대책 마련까지 끌어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경인일보의 <북한 오물풍선 사이로 이륙하는 비행기> 보도는 사진보도부문에서 수상작으로 손색이 없었다. 김포국제공항에서 취재 중인 기자가 북한이 남쪽으로 보낸 오물풍선을 목격하고, 비행기 이착륙에 지장을 줄 수 있겠다는 판단으로 카메라 앵글에 오물풍선과 여객기를 함께 담았다. 순발력과 감각이 돋보인 사진이다. 여기에 국정감사에서 오물풍선으로 인한 여객기 순항 차질이 거론될 정도로, 뉴스로서의 영향력이 컸다는 점도 사진을 한 번 더 보게 만들었다.
전문보도부문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된 매일경제신문의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인터뷰> 보도는 ‘특종은 준비된 기자만이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보도 사례였다. 2018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시도했던 한강 작가와의 인터뷰가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전날 성사됐고, 그래서 이 ‘기막힌 우연’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특종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운(運)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기자의 노력이 너무나 뜨거웠다. 한강 작가의 전(全) 작품을 다시 읽었고 그와의 인터뷰를 준비했던 모든 시간이 치열했음을 확인하면서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이견이 없었다. 사족 하나, 공적서를 읽고 감동받았다는 평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