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재착수
① 단독취재( ), ② 단독기획(○), ③ 보도자료 심층기획( ), ④ 제보( ), ⑤ 기타( )
2. 출품 보도물 목록(최초 보도부터 순서대로 3건까지 기재)
번호 보도일시 보도 제목
1 8월11일, 19시00분 서남해안 미확인日군사시설 발굴
2 8월12일, 19시00분 무안·영광에도 진지...서남해안 의문의日특공흔적
3 8월13일, 19시00분 일제 광주항공기지‘지하시설’존재 가능성...“모든 시설 지하화”
3. 보도제작경위 -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일제 유적을 보는 ‘달라진 시선’
그동안 한국 사회는 일제가 남긴 유적을 직시할 여유가 없었다. 일제의 유적은 원망과 척결의 대상이었고, ‘일제의 잔재’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게 전부였다. 예산을 들여 현장을 조사하고, 그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에 나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방치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일제의 전쟁 유적을 관리해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최근의 일이다.
■생생한 현장과 일본의 문헌, 현지 취재의 삼박자
KBS광주·목포의 광복 80주년 기획 취재는 서남해안의 일본군 군사시설 발굴과 광주해군항공기지의 실체를 확인하는 두 갈래로 진행됐다. 우선 전쟁 말기 전남에 배치된 일본 육군 150사단의 역할에 주목하고, 진지배치도를 확보했다. 150사단의 존재는 일부 연구자들의 논문에 단편적으로 등장했지만 진지배치도를 토대로 현장을 발굴 조사한 취재는 없었다. 진지배치도에는 수백 개의 진지가 구축됐거나 구축 중인 것으로 표시돼 있다. 광복절을 앞둔 뜨거운 여름날 수풀 속을 뒤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누군가 한번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겨 취재에 착수했다.
광주항공기지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연료고나 폭탄고 등 기지의 부속 시설들이 광주 도심에서 10년 전후부터 발견되고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광주에 일본의 항공기지가 있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광복 이후에도 그 일대에는 상무대가 터를 잡아 줄곧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다. 한국 정부에는 당연히 일제 해군기지와 관련한 기록이 없다. 이런 이유들로 광주항공기지는 수십 년 동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았다.
이번 취재는 일본 측 공문서의 기록과 현장 취재의 병행이 필수적이었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일본 군사시설 전문가들의 견해도 빼놓을 수 없었다. 일본의 전문가들에게 현장의 영상을 보여주고 견해를 반영했다. 세 방향의 취재는 상호 보완 작용을 통해 일본군 시설의 목적과 설치 배경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이번 기획보도는 ‘日군사요새 <추적 서남해안은 전쟁기지였다>’라는 제목으로 후속보도를 포함해 모두 11일(광주전남권 10일, 전국 1일)에 걸쳐 방송했다.
■80년 만에 찾아낸 ‘전쟁 시설’
먼저, 진지배치도를 토대로 찾아낸 섬(용출도/가사도)의 진지들을 보도했다. 대부분 수풀 속이라서 일부 취재는 주민의 안내를 받았다. 용출도는 신안과 목포의 항구에서 불과 2킬로미터 거리로 한 가구만 살고 있었다. 여섯 개 진지 표시 중 두 개는 해안선과 가까운 데다 해안선의 굴곡도 적절해 대략적인 위치를 추정하기 쉬웠다. 취재진은 해안가 갯바위 위쪽에서 첫 번째 기관총 진지를 찾아냈다. 물이 가득 차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총안의 틈으로 깊이와 내부 콘크리트 구조를 확인했다. 진지배치도의 신뢰도를 확신한 취재진은 반대쪽 해안가에서도 두꺼운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총안을 찾아냈고, 동굴 입구도 발견했다. 몸을 웅크린 채 들어간 진지는 입구, 갱도, 콘크리트 사격실, 총안까지 완벽한 형태가 남아 있었다. 진지배치도에 있는 설계도와도 일치했다. 영상으로 포착한 사격실과 총안의 모습은 누가 봐도 전쟁을 위한 시설이었다.
■서남해안에 미확인 日진지 ‘산재’
진도의 부속섬 가사도도 기준점이 명확해 취재 대상으로 선택했다. 섬 남쪽의 광산은 동굴이 십자 모양으로 교차해 ‘십자동굴’로 불리는데 그 주변에 8개의 진지 표시가 집중돼 있다. ‘지휘소’ 표시의 동굴을 포함해 여섯 곳의 진지를 발견했다. 잘 다듬어진 지휘소 동굴에는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던 구멍이 남아 있었다. 150사단 진지배치도에 진지 표시 수백 개가 있다는 점과 주민 증언을 토대로 서남해안에 미확인 진지가 산재해 있을 가능성을 보도했다. 미확인 진지 발굴은 진지배치도에만 의존한 건 아니다. 일본군의 비행장이 있었던 전남 무안에서는 민가와 밭 주변에 방치되고 있던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지상 진지(토치카) 시설임을 확인했다. 또 목포와 해남에 일본군의 자살 특공정 기지가 분명한 곳들이 있는데도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도 보도했다. 보도 중간중간에 해당 시설에 대한 일본 측 전문가의 견해를 반영했다.
■베일 벗은 ‘광주항공기지’
취재진은 일제가 제작한 광주항공기지 지도와 공사 관련 문서를 발견해 시야를 광주로 넓혔다. 기지의 시설 분포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는 ‘광주비행장 견취평면도’와 ‘광주항공기지 일반도’를 보도에 주로 활용했다. 항공기지 취재는 퍼즐을 맞춰가는 식으로 진행됐다. 활주로와 수십 개의 직사각형들, 커다란 지하 갱도 표시 네 개, 세 개의 물탱크 표시(#). 10년 전후로 연료고와 폭탄고, 하나의 물탱크, 용도를 모르는 두 개의 지하 시설이 발견됐다.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위치와 구조 등이 지도와 일치하는지 확인했다. 정체를 몰랐던 지하 시설 두 곳은 일본 전문가들의 견해, 현지 항공기지와의 비교를 통해 실체에 접근해 갔다. 천장 높이가 무려 4미터에 달하는 ‘Y’ 형태의 동굴은 ‘공장 시설’일 가능성이 크고, ‘ㄷ’형태의 동굴은 통신설비를 갖춘 핵심 시설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ㄷ’형태 동굴은 내부 구조와 설비가 일본 히토요시항공기지의 ‘작전실/무선실’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현지 취재로 밝혀냈다. 취재진이 발굴한 ‘광주항공기지 공사현상보고서(1945년 3월 작성)’에는 모든 시설을 지하화하고 터널 구조로 견고하게 만드는 일정과 공정률이 기재돼 있다. KBS 보도로 광주항공기지 지하시설들의 존재가 명확하게 입증된 것이다.
■광주 도심 ‘대규모 지하시설’ 가능성 제기
취재진의 시선은 가장 큰 지하 시설 표시로 향했다. 도시개발 과정에서 그 지하 시설이 발견, 철거, 활용됐다는 기록은 없었다. 취재진은 일본군 지도를 미군 항공사진(1950), 국토지리정보원에 등록된 옛 지도(1956), 최근의 위성사진(2014)과 비교 검증해 큰 오차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모든 비교 과정에서 대규모 지하시설의 위치는 광주광역시청에서 불과 수백 미터 거리에 있는 5.18기념공원의 언덕으로 확인됐다. 취재진은 지하 시설과 관련이 깊은 핵심 단서인 일본군의 물탱크 시설도 발견해 보도했다. 지도에 따르면, 물탱크와 지하 시설 간 거리는 30~40미터에 불과하다. 대규모 지하 시설이 언덕 아래 묻혀 있을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일제 항공기지 사진·일기·육성 녹음 최초 보도
광주로 해군항공대를 이전한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에서 광주항공기지의 사진과 부대원의 일기, 육성 녹음을 확보해 최초 보도했다. 1980년에 출판된 일본 해군 관련 사진집에 광주항공기지의 모습이 실려 있었다. 그중 한 장은 250킬로그램의 폭탄 모형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한 부대원들의 사진이었는데 그 주인공의 일기도 발견했다. 비행 교관이었던 그는 46기의 비행기와 함께 광주 기지까지 날아온 순간을 생생히 기록했다. 자신을 광주항공대의 부관으로 소개한 인물의 10년 전 육성 녹음도 이즈미시에서 확보했다. 그는 이즈미에서 광주로 옮겨 간 인원 천 명 중 조선인이 절반에 달했고, 부대 내 정비를 조선인이 담당했다고 말했다. 또 광주 기지가 교육용에서 실전 부대로 소속이 바뀐 뒤 부대원들이 전투기나 함정 폭격으로 배치됐으며 광주에 종군위안부가 존재했다고 증언했다. 역사의 기록을 위해 정부나 자치단체의 조사가 필요한 내용들이다.
서남해안의 진지 발굴과 산재 가능성, 광주항공기지의 실체를 확인하는 보도에 더해 침략의 근거이자 강제동원의 현장이 실태 파악도 안된 채 방치되고 있는 현실, 일본 전문가들의 반응과 평가, 국내 근대 건축 연구자들의 답사 현장, 보도에 따른 움직임 등을 이어서 보도했다.
4.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① 기사에 등장하는 익명취재원의 상당성여하
<단독/일기·육성 최초 공개 '광주항공기지' 생생히 담겨>(8월 14일)에 등장하는 일제강점기 광주항공기지 부대원의 육성 녹음은 익명을 전제로 이즈미시의 허락을 얻어 보도함.
② 제보자와의 특별한 이해관계여하 / 없음
③ 직접취재(바이라인), 현장취재(데이트라인)여하 / 모두 직접, 현장 취재
④ 기타 특이사항 여하 / 없음
5.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서남해안 미확인 군사시설 관련 선행 보도는 없음. 과거 광주항공기지의 일부 지하 시설이 발견됐다는 내용과 미확인 지하시설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보도가 일부 있으나 독자적인 현장 취재 없이 현상과 주장을 옮긴 정도의 보도였음. KBS가 현장과 문헌, 일본 현지 취재로 직접 확인한 부분이 많아 추종보도는 쉽지 않았음. 시민단체와 지역 문화원, 정당 지역위원회도 KBS의 단독 보도라는 점을 정확히 밝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라남도가 미확인 유적에 대한 학술 용역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비롯해 KBS 보도에 따른 타 매체의 기사가 50건 정도 보도됨.
*징용 피해자 지원단체 "광주·전남 지역 일본군 시설 조사해야" (연합뉴스 / 8.20.)
https://www.yna.co.kr/view/AKR20250820130400054?input=1195m
*전남도, 일제강점기 유적 교육 관광 자원으로 활용(전남일보 / 8/28.)
https://www.j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0000003611
*광복 80주년 전남도, 일제강점기 유적 보존 활용 강화(목포MBC / 8.28.)
https://www.mpmbc.co.kr/NewsArticle/1480341
*광복 80주년, 광주 한복판에 ‘일제 군사요새’ 흔적 드러나(프라임경제 / 9.5.)
https://www.newsprime.co.kr/news/article/?no=703215
*박수기 “도심 일제 군사시설 발굴조사 필요”(광주매일신문 / 9.7.)
http://www.kjdaily.com/article.php?aid=1757244350663332002
6. 사회에 끼친 영향
시민단체와 목포문화원, 지역의 국회의원 등이 일본 군사시설의 실태 파악을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광복 80년이 지나도록 존재조차 모르는 일제의 군사시설이 있고, 여전히 산재해 있을 가능성에 하나 같이 충격을 드러내며 즉각적인 조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목포문화원은 입장문에서, “이 땅을 전쟁의 참화 속에 몰아 넣으려 했던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 드러났다”며 “대대적이고 체계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김원이 국회의원은 인터뷰에서 “사실 파악도 못했다는 데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며 “진실을 밝혀내는 사업이 시작돼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목포시 지역위원회도 “일제가 서남해안을 최후 방어선으로 전쟁 책동을 했음이 드러났다”며 “실태를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고 입장을 냈다.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KBS 보도가 “일본 연구자들의 증언, 유사 군사시설과의 비교 검증을 통해 광주 군사시설들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매우 유력한 단서를 제공”했고, “사진과 일기, 육성 녹음을 발굴한 것은 획기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침략과 식민 통치의 직접적 증거이자 국토 전쟁기지화, 강제동원의 현장을 친일 잔재로 치부하고 방치해선 안 된다”며 후속 대응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광주광역시의회 박수기 의원은 본회의 발언을 통해 “광주광역시가 일제 군사시설 매립 가능성에 대해 전면적인 발굴 조사에 나서야 한다”며 “역사적 유산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전라남도는 보도가 시작되고 보름 만에 “학술연구용역을 추진하여 일제강점기 유적의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활용 방안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한 발 더 나아가 “후세 교육과 지역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향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전라남도는 관련 문헌의 확보에 나서는 등 학술조사의 방향성을 정하기 위한 기초 작업에 착수했고, 예산 규모를 검토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도 내년에 자료 수집과 정밀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보존 가치를 확인해 활용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취재진은 서남해안 미확인 군사시설과 광주항공기지의 지하시설을 직접 발굴하기 위한 취재를 틈틈이 이어나갈 계획이다.
7.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언론윤리강령기준 준수함. 기존의 광복절 기획보도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생생한 현장의 단독 발굴과 일본의 문헌, 현지 취재까지 더해진 치밀한 탐사보도로 평가함.
8. 기타 고려사항
① 외부 지원여부, 보도당사자의 반론신청, 언론중재위원회에의 피신청사항이 있으면 이를 언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② 기존 출품작을 다시 출품하시는 경우, 출품 이유와 보완 내용을 아래 적어주시기 바라며 정당한 사유 없이 출품부문을 변경하여 다시 출품하시는 경우 감점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420회 전체 총평
올 한 해도 기자들의 취재 영역인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이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를 제대로 국민에게 전달하기 위한 기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좋은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제420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총 87개의 보도가 출품됐다. 특히 취재보도1부문과 지역취재 부문에 각각 18편과 19편이 출품돼 수상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지역에서 출품된 경제, 기획 기사 등도 35편에 달했는데 이는 지역 언론의 활성화와 함께 ‘이달의 기자상’에 대한 높은 관심을 의미해 앞으로 행보가 기대된다. 심사위원들의 치밀한 검토와 치열한 논의를 거친 끝에 6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취재보도1부문에는 KBS의 <검찰, 건진법사 ‘관봉권 띠지 분실’ 파문> 보도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었고 언론도 쉽게 놓칠 수 있었던 사안이었다. 취재 기자들이 꼼꼼하게 내용을 잘 살폈고 그 노력이 검찰개혁에 대한 논의의 기폭제가 됐다. 검찰개혁의 또 다른 당위성을 증명한 공익적 의미가 특히 컸다.
취재보도1부문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은 또 하나의 작품은 더팩트의 <‘코스피 5000’ 외치는 정부…법사위원장 이춘석은 차명으로 억대 주식 거래> 보도다. 보도의 의미와 파장이 선정 사유이지만 동시에 사진기자가 사진과 함께 글로써 특종상을 수상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사진기자의 ‘촉’이 의원의 뒷모습을 주목했고, 카메라 렌즈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으며, 의원실에 대한 추가 취재를 통해 특종이 나올 수 있었다. 사진기자가 자신의 사진을 바탕으로 취재에 나서 성과를 낸 보기 드문 사례였다.
경제보도부문에서는 서울경제신문의 <韓 원전 수출 50년 족쇄> 보도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원전과 관련 산업 위축에 대한 우려가 담긴 기사는 많았으나 이 보도는 실체를 파헤치며 심도 깊은 취재가 이뤄진 점이 높이 평가 받았다. 체코 원전 사업 수주 이후 떠돌던 소문을 7개월간 추적해 불공정 계약 의혹을 밝힌 수작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계약은 ‘주고받기’일 수밖에 없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으나 ‘기사가 아니었으면 묻혀버렸을 사실을 밝힌 압도적인 기사’라는 것이 중평이었다.
기획보도 방송부문의 수상작인 JTBC의 <죽어가면서도 “충성” 외친 20살 김도현 일병> 보도는 다른 스트레이트 기사에 비해 더 깊이 들어가, 보이지 않는 이면을 잘 보도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군 관련 사건·사고가 많고 그동안 이에 대한 다양한 보도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보도는 군 기관의 은폐와 엄폐를 뚫고 ‘심사위원들의 마음까지 아프게 한’기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SBS의 <서울구치소 ‘독방 거래’> 보도는 소문과 의혹을 담은 한 줄의 제보를 바탕으로 뚝심있게 취재해 진실을 세상에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달에 출품된 기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기사 중 하나라는 게 중론이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취재가 매우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축적된 취재 역량이 제대로 작동한 것으로 보였다.
지역 기획보도 방송부문에서는 KNN의 <지역 정치인과 손현보 세계로교회의 유착 의혹> 보도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특히 지역에서만 알 수 있는 문제를 잘 풀어낸 것으로 평가받았다. 지역 내 구청과 시의원 등이 얽히고설키며 권력-종교-정치가 만들어낸 복마전의 일단을 잘 드러냈다. 취재에 대한 압박과 각종 공세에도 불구하고 ‘증거와 검증’을 통해 저널리즘의 정신을 잘 지켜낸 것으로 보인다.
취재 현장을 지키는 기자들의 역량과 열정에 의해 한국의 저널리즘이 나날이 튼튼해지고 있다. 올해 남은 기간에도 전국 각지의 다양한 매체에 소속된 기자들의 건투가 기대된다.